스타트업, 해피 셀링하고 계신가요?

필자가 아주 존경하는 이어령 선생님이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어떤 20대 취준생의 고민을 들어주는 자리였다. 그 학생은 대기업에 취직하자니 경쟁이 심해 합격이 어렵고, 중소기업을 가자니 연봉이 너무 낮고 일도 힘들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었다.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이런 비슷한 고민을 한 번쯤 할 것이다. 공무원 시험은 몇 년을 공부해도 합격 보장이 안되고 대기업 문턱은 너무 높다. 중소기업은 연봉 낮은 건 둘째치고 조직에 시스템이 없어 중구난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뭐든 배우고자 하는 욕망이 큰 나이에 쉽지 않은 선택이다. 만약에 내가 멘토라면 그에게 무슨 도움말을 주어야 할지 판단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취업도 안되는데 그냥 창업이나 하라고 답하는 건 상대의 니즈에 부합하지 않는 동문서답이다.

이어령 선생님은 언제나 고정관념의 틀을 깨서 사고의 프레임을 넓혀 주는 분이다. 불멸의 걸작 ‘축소 지향의 일본인’에서 그의 현미경 같은 관찰력과 망원경 같은 초월성을 한 번 느껴보라! 선생님은 어떻게 하면 취업을 잘할 수 있는가를 문제로 보지 않았다. 예컨대 우리네 중년 아저씨들이 평생 그렇게 불철주야 일을 하고도 은퇴할 때쯤이면 남은 게 없다, 그동안 뭐를 했는지 모르겠다, 이제 뭐해 먹고살까 등을 외치는 이유가 뭘까? 직장생활 20년을 뒤돌아 보아도 나 자신이 그리 되지 말란 법이 없는데도 왜 우리는 기어코 취업이라는 굴레에 얽매여 있을까? 꼭 불나방이 불사조의 각오로 불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인간에게는 ‘소유의 욕망’과 ‘존재의 욕망’이 있다고 하는데, 혹시 나의 삶과 나의 존재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적이 있는가? 나는 나의 존재의 욕망을 채우기도 전에 소유의 욕망 만을 채우기 위해 헐떡 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의 삶, 특히 나의 젊은 시절의 값진 삶을 고작 취업이라는 프레임 안으로 포커스 할 것인가? 이건 어느 회사가 신의 직장이고 어느 회사가 연봉을 많이 주느냐의 문제 수준이 아닌 것이다. 과연 나의 어떤 존재인가?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다 보니 마치 직업병이 도진 듯 우리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되새기게 되었다. 회사를 차리고 경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큰 회사를 만드는 것인가? 돈을 많이 버는 회사를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스타트업들이 아무 생각 없다가 누가 비전이 뭐냐고 물어보면 앵무새처럼 대답한다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making a better world)’ 것인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고작 회사 규모를 10배, 100배 키우는 것일까?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고작 투자 유치일 뿐인가? 그 보다는 오히려 간소하지만 더 소중한 어떤 가치는 없는 걸까? 오해하지 말자. 회사 규모를 키우는 성장 전략도 중요하고, 투자를 받아 패트스 트랙(fast-track)을 밟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기업가가 가져야 할 본질의 목적은 아닌 것이다. 그 본질의 목적은 바로 기업가정신이다. 간혹 10억 벌면 회사는 접겠다는 CEO들이 생각보다 많다. 회사가 커지면 대기업에 인수시키고 주식 부자가 되겠다는 CEO 들도 정말 많다. 그들이 옳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모두 건실한 스타트업이 선택할 수 있는 훌륭한 출구전략 맞다. 그러나 우리는 ‘존재의 이유’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NJOY. AND HAPPY SELLING.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의 대표님이 이메일을 쓸 때마다 끝에 서명처럼 붙이는 문구였다. 바빠 죽겠는데 뭘 즐겁게 팔라는 얘긴지… 별로 와 닿지 않는 말이었지만, 요즘 들어 사뭇 신선하게 들린다. ‘셀링’이라는 단어와 ‘해피’라는 단어가 묘하게 대비된다. 돌이켜 보면 나의 ‘셀링’ 라이프는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매 분기마다 세일즈 타겟이 주어지고 동료들끼리 서로 좋은 지역을 맡기 위해 눈치 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지런히 다니고,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완성이란 애당초 있지도 않은 문서 작업을 하고, 매일 마다 일이 굴러가도록 묘안을 짜내야 하고, 미팅 때는 본부장님의 살벌한 반(半) 협박을 이겨내야 했다. 항상 숫자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에 잠도 잘 오지 않는다.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의무감과 회사의 제한적인 리소스 사이에서 방황한다. 더 잘 해 주고 싶은 고객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로 맘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지만 그나마 내가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라고 자문해 볼 때 그나마 생각나는 건, 나에게 유독 까다로왔던 고객과 친해져 개인적으로도 만나는 사이가 되었을 때, 거래처가 사옥을 확장 이전하여 행사에 초대받았을 때가 떠오른다. 엔조이, 기업가정신, 해피 셀링… 대충 이쯤 어딘가에 답이 있지 않을까?

반면 제법 회사가 커져 확장 이전하고 업무용 차도 업그레이드 한 CEO 중에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많다. 회사는 잘 나가도 CEO인 본인은 재미가 없고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정말로 많다. 그들은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지겨워서 힘들다고 한다. 지. 겹. 다. 고? 좋아하는 일도 직업으로 하면 원래 재미 없어지더라 하는 말로 애써 웃어넘길 것인가?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꼭 명심하길 바란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나이 서른에 대박이 나서 떼돈을 벌었단 얘기를 들으면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아이고, 또 한 사람 독약 마셨구나. 시기심에 애써 부러운 맘을 숨기는 게 아니다. 작은 성공에 축배를 들다 송사에 연루되고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진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결과에 대한 획득을 성공으로 인식해서 그런 거다. 그러면 그다음의 인생이 척박해진다. 성공을 이미 했는데 그다음을 무슨 희망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대박 난 것을 성공으로 삼지 말고, 조직과 함께 일하는 그 과정 자체를 성공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항상 행복할 수 있다. 매사에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삶을 즐기는 사람 만이 행복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행복은 소유하는 게 아니다. 행복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 스타트업세일즈연구소 유장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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